※ 영화의 내용까발림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뭐 사실 누구나 예측 가능한 뻔한 이야기니까 말이죠. 하여튼 읽으실 때 내용 까발림이 될 법한 부분에는 주의하셔도 좋습니다. (웃음)
람보4 : 라스트 블러드
RAMBO (2008)
감독, 주연 : 실베스타 스탤론
한 문장 평 : 람보의 때늦은 킬링 필드 관광
- 이 영화의 실제 영어 원제나 그런 것과 상관없이, 람보라는 이름은 한국인들에게도 특별한 기억 중 하나이다. 물론 80년대에 이미 '성인용'이던 이 액션 영화 시리즈를 본 사람들은 아마 나이가 좀 있었을 테고, 현재 20대나 그 이하인 사람들이 이 영화의 옛날 작품들을 리얼타임으로 봤다면 뭔가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아 뭐, 케이블도 있고 VHS도 있긴 했지만.
1편에서 월남전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이상한 녀석 취급 받았고, 2편에서 다시 태국 쪽으로 동료들을 구하러 갔던 람보. 그는 3편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소련군과 싸웠지만, 어느 사이에 정세와 입장이 바뀌어 버려서 미국이 침략자 취급을 받는 지금에 와서는 그런 과거는 다 의미없는 지나간 과거일 뿐.
드디어 이번 4편에 와서 '킬링 머신' 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람보는 여전히 죽을 장소랄까, 죽일 장소랄까 하여튼 뭔가 갈 곳을 찾기 위해 적당히 변명거리를 찾아서 고향 밖의 어딘가를 전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까. 태국에서 뱀 사냥을 하면서 살고 있는 람보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서 미얀마가 된 버마(이 영화에선 미얀마를 끝까지 버마라고 부르고 있다…)에 입국하여 군부에 대한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는 카렌 족에게 의료 활동과 약품을 지원하려는 미국 선교단을 안내하게 된다.
처음에는 선교단의 부탁을 거절했던 람보지만 선교단의 여성인 사라의 부탁에 마음이 움직인 이유는 영화 내에서 확실히 그려지지 않는다. 죽일 만큼 죽이고 참혹함을 보아왔던 입장에서 자기처럼 손에 피를 묻히고 '죽일 고생'과 '죽을 고생'을 겪은 동지가 늘어나기 때문을 바랬던 것인지, 아니면 생명을 죽이는 자신과 달리 생명을 직접 낳는 입장인 여성의 부탁이었기 때문이었는지 영화 내에선 설명도 의미도 없다. 그런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입장이고, 정치적 해석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떤 정치적인 그런 걸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저 사람에겐 자신이 필요한 장소가 있고 돌아가야할 곳이 있다는 가장 근원적인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액션 영화' 시리즈가 늘 그랬던 것처럼 필요 이상의 폭력이 머무를 장소를 찾아갈 뿐이다.
어쨌든 간에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별로 편하게 볼 수 없는 이 위태위태한 상황 설정 속에서, 버마로 들어간 선교단은 당연히 군부에 붙잡히고 선교단의 높은 분은 용병단을 고용하여 사람들을 구하려고 한다. 람보는 용병단과 합류하여 선교단을 구하기 위한, 또 한번의 '피를 볼' 전투에 참가한다.
그리고 비록 나이는 먹었어도 람보는 여전히 람보다. 그는 여전히 전설급 킬링 머신이고 급조된 용병단에게도 절대로 밀리지 않는 냉혹한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자임에도 사람을 살리는 것의 의미를 알고 그 가치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를 흘리고 손을 더럽혀서 타인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한계도 잘 알고 그 한계에 냉소적인 그런 인물이다.
= 하여튼 전설급의 농담거리가 된 화살 쏘기는 이번에도 건재하다. 아동용 TV시리즈의 '정의의 사자' 같은 캐릭터들처럼 높은 데서 이름을 말하는 식의 똥폼은 잡지 않더라도, 매우 험악한 위기 상황에서 멋지게 화살을 쏘면서 나타난 람보는 예전같이 근육의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 않을 것 같은 임기응변이랄까 오랜 시간의 싸움질을 통해서 익힌 경험으로 싸우는 느낌이 난다고 할까.
그게 람보 개인의 정신적인 성장이나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저 과거를 버리지 못한 체 '킬링 머신'으로 살아온 '시간'에 좌우되는 습성이랄까 그런 것이라는 것이 좀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하여튼 람보는 이번에도 왕년의 실력을 선보이면서 특유의 "외침"과 함께 학살극을 찐하게 연출한다.
다만 선전카피와 달리 의외로 이 영화는 올곧은 방향의 액션영화는 아니고, 액션영화로 볼 때도 액션에서의 중심 방향은 좀 바뀌었다고 할까. 액션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이전의 '전쟁 답지 않게 안무가 있는 격투'의 액션이 아니라, 시체와 살점이 나뒹굴고 화약과 지뢰가 일으키는 '폭풍과 학살의 액션'을 보게 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기 쉬운 '골빈 미국 영웅인 람보' 시리즈에 대한 기존의 선입관을 포함하여…) 자신들이 갖고 있던 기대와 이 영화 본편이 제법 다르기 때문에 재미의 강도가 차이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일단 관객들이 이 영화에 실망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화끈하게 주먹과 몸이 맞부딪치는 액션을 기대했더니, 칼과 총으로 살을 파내고 자르는 액션이 나와서' 라는 이유로 실망할 것이다. 더 이상 몸을 날리는 액션이 힘들기 때문에 그 것을 보충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잔혹함이 과장되게 표현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배우의 나이탓도 있지만 기술의 발전과 영화 시장의 변화로 표현의 한계가 수정된 덕분에, 람보라는 캐릭터가 베트남의 전쟁 속에서 느꼈을 참혹함을 더 리얼하게 그릴 수 있게 되었기에 이루어진 변화일 것이다.
다행이 이번 편은 람보의 육체적인 액션 자체는 줄어들었지만, 왠만한 고어 영화 뺨칠 정도로 살점과 핏물이 튀기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대구경 기관총으로 사람을 퍽퍽 날려버리고 칼로 내장을 뽑아내는 것도 태연하게 보여준다. (심지어는 유아살해까지도…)
그리고 마지막에 참혹한 살육을 지시한 미얀마 군부의 장군과 역시 그에 맞서서 살육을 선보이는 킬링 머신 람보가 대치하는 장면은 제법 시적이랄까 악취미적인 분위기를 풍길 수도 있지만, 뭐 실제로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고 그냥 보여진다는 정도. 그래도 이 짧은 장면은 거의 "너와 나는 그리 다르지 않아" 하는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처럼 보일 지경이라고 할까. 물론 그 장면 자체는 이어지는 내장뽑기의 강렬함 때문에 바로 상쇄되다시피 하지만….
중간에 크레모아로 남아있던 유폭탄을 터트리는 건 좀 오버다 싶기도 하고, 거의 핵폭발 급으로 과장된 거대 폭탄의 무서움은 '대량살상병기'로 대표되는 공포를 현실로 보여주는 유치함이기도 하다. 이게 영국군이었던가 연합군에 의해 투척되었던 옛날 물건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지금 세상에 남아 있는 분쟁의 씨앗은 대체 어디였던가에 대한 은근한 농담이자 근래 미국 정부에 대한 묘한 비꼬임처럼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 유치함과 과장된 표현 때문에 정치적인 메시지는 바로 폭발의 충격파로 바뀌어 람보와 함께 날려지게 된다.
액션영화로의 화려한 디테일이나 동선 같은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총을 맞고 뒹구는 시체들의 동선과 파편이 튀기는 것 문자 그대로 '전장의 폭풍'이 섬세하게 그려지는 전쟁 영화라는 기분이다. 의외로 장탄 장면의 리얼함은 어째 대한민국 육군 대공포대에서 M60 계통을 본 입장에서 보면 제법 '오 그럴싸 하잖아' 하는 기분. 디테일적인 문제가 아니라 탄통을 바꾸는 중에 공격을 받는 그 상황 자체라고 할까. 하여튼 무적의 람보지만 그도 총을 맞고 괴로워한다. 사람을 죽여서 사람을 구한다는 모순 속에서 고민도 하고 결국 마지막에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 이것저것 말을 늘어놓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80년대에 화제가 되었던 크메르 루주 학살을 소재로한 [킬링 필드]의 람보 판이다. 베트남에서 싸웠던 람보가 미국에 돌아와서 느꼈던 고혹감과 상관없이 그는 그 스스로 또 하나의 자극과 살육을 찾아서 또 하나의 학살장을 찾아갔을 뿐이고, 그 결과로 우리는 80년대 냉전시대 체제 하에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과 자신이 살아 있다는 쾌감을 느끼기 위해 남과 이웃을 죽인다는 내란 속 학살이라는 현실적인 과장을 보게 된다.
과거에 [킬링 필드]라는 영화가 그랬듯이, 우리가 정말로 그 불합리한 상황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불운한 사람들에게 뭔가 해줄 수는 없더라도, 뭔가 보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게 지금 버마의 현실이다' 라고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수준의 '정훈 교육' 영화이다. 다만 그걸 노골적으로 의식하고 있지 않으며 정말로 자극을 위한 자극이 되기 위해서 피와 살육이 필요 이상으로 넘치지만, 예전 킬링 필드의 해골 산과 같은 그런 만화적으로 과장된 것은 없이 흔한 80년대 액션 영화의 우직함을 남긴 체 람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구현할 수 있던 단순한 액션과 잔혹함을 이 영화에서 '여과없이 본격적으로' 보여준다는 정도이다.
다만 그것을 2000년대의 발달된 영화 기술로 정말로 살점이 튀기고 사체가 찢겨나가는 잔혹함으로 눈 앞에서 펼쳐 보여줄 뿐. 거기엔 어떤 정치적 메시지나 심각한 예술적인 시도는 없다. 단지 우리가 예전에 상상에서만 남겨둔 '진짜 전쟁'의 일부를 이미지로 눈 앞에 떠올릴 수 있는 근거가 될 뿐. 하여튼 우리는 이것으로 람보가 베트남에서 보았던 것을 간접 체험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가 느꼈던 고독함과 절망감을 느끼고 그가 고향에 돌아와서도 느긴 소외감이나 기타 여러가지를 추측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것에 무슨 큰 의미가 있지는 않다. 아니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다. 그냥 그걸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니까.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로써, 그리고 그 캐릭터가 갖는 소외감을 같이 나누었고 몰입되었던 스탤론 개인으로써 그는 람보라는 캐릭터가 변하지 않고 또 람보 그 본인을 연기한 사람으로써 스스로를 망가뜨리지 않는 선 안에서 갈 수 있는데까지 갔다.
아니 충분 이상으로 잔혹하고 자극적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이 람보 시리즈가 여태까지 전쟁터라는 이 세계에서 돌아온 왕년의 투사 람보라는 사람의 개인사와 평화로운 우리들의 일상과의 충돌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야 말로 비로소 람보는 그가 정말로 괴로워 했던 전쟁의 일면을 진짜로 함께 체험하고 있다는 것일까. 람보2에서도 람보3에서도 전장으로 돌아갔었지만 그게 전부 다 표면인 눈가림으로 보일 정도로 이번에는 확실하게 폭력의 궁극적 지향점인 전쟁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게 히라노 코타의 만화 [헬싱]의 미친 소좌가 외치는 그냥 단순히 극한으로 희화화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내가 뭘 봤는지 아냐고~' 외치는 그런 람보가 보았던 것에 근접한 또 하나의 '단순화된 영상'에 그칠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일방적인 살육으로 단순화된 영화라고 해도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리얼리티가 성립할 정도로 람보는 우리에게 친숙하며 또 동시에 우리는 그의 표피만 알고 있던 것이 아니냐~ 는 식으로 이 영화는 람보가 겪었던 것에 근접한다.
다만 이번에도 여전히 람보는 람보일 뿐, 영화를 보는 우리가 될 수는 없다는 식으로 살짝 그의 내면은 그냥 예의상 비춰주는 정도다. 뭐 무리하게 람보의 고뇌니 그런 걸 보여주기 보다는 그는 행동하는 왕년의 전사 답게 행동으로 그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용병단이 구출 임무의 실패를 걱정하여 현지인을 구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언제나처럼 멋지게 화살로 병사들을 꼬치 꿰고 현지인을 구해낸다. 어느 쪽이 먼저냐 어느 쪽이 중요하지 못하느냐가 아니라, 정말로 살육을 알기 때문에 알수 있는 '생명을 구하는 가치'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람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액션이 힘이 빠졌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외려 나이를 먹은 탓에 생긴 묵직함이 외려 더 필요 없는 과장 대신 진지하게 다가오게 될 지경인 것이다.
- 그리고 사람을 구한다고 갔던 선교단의 리더 마이클은 결국 눈 앞에서 사람이 죽는 현실에 견디지 못하고 짱돌로 미얀마 군의 병사를 때려죽인다. 그렇게 그도 결국 람보와 같이 손에 피를 묻힌 자가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마이클과 함께 생명의 위험을 거쳐온 사라는 고통과 공포, 그리고 살아 있다는 쾌감 때문에 이유없이 본능적으로 흐느낄 뿐이다. 대체 여기서 얻는 것이 무엇이었을지는 그 사람들의 고통과 동시에 그냥 평온히 살고 있는 우리는 모른다. 말하기도 힘들다.
그저 체험하지 못하니까 결코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우리가 모르는' 참혹한 현실이 비춰지는 거울과 같은 이 영화에서 비춰지는 현재상황의 파편을 통해서 상상하고 말할 뿐.
그런 간접 체험의 의미와 가치에 옳다 그르다 같은 걸 말하기보다도 이 꾸며진 간접 체험을 통해서 우리가 느껴야할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게 한계가 아닐까. 설령 이게 람보와 함께 하는 [킬링 필드] 식 전쟁 테마 파크일지언정 그 안에서 순수하게 전쟁이란 것의 참혹함을 볼 수 있고 그 안에서 전쟁 안과 밖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나름대로의 가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끝없는 분쟁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해답을 내는 게 이 영화의 목표는 아니다. 그저 람보 같은 싸움 밖에 모르는 사람이 싸움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그런 기대를 모으는 것이 목표라면 몰라도. 람보도 고향으로 돌아갔으니 그저 버마 사람들도 싸움과 살육의 현장에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게 단순한 바람이 되느냐 어떤 행동으로 구체화 될 수 있느냐는 모른다. 무책임해보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어떤 개입이나 간섭의 여지가 없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영화는 그런 객관적인 시점을 어떻게든 지키려고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 솔직함이 단순 무식한 액션 영웅이자 그냥 병졸인 뿐인 람보의 한계이며 그와 체험하는 전쟁+킬링필드 테마 파크 안에서 그려낼 수 있는 한계인 것을 알고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이도 하다. 뭐 이 영화의 미덕은 딱 거기까지지만.
하여튼 고어와 피칠갑 싫어하고 잔혹한 거 못보는 분은 일단 다시 생각하길 바란다. 영화 자체는 나쁘지 않고 충분히 볼거리와 재미가 있지만, 역시 이 정도로 지나친 핏물이나 과장된 학살은 그리 쉽게 볼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적어도 전쟁이란 이름의 대규모 살육에 대한 것을 피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진지하게 그려냈다는 자체 만으로도 이 영화는 람보 시리즈의 마무리 방점을 찍고 있으며, 람보 본인도 이제 더 이상 킬링 머신이 아니어도 좋을 정도로 (…한마디로 질릴 정도로) '많이 죽인' 람보가 되었으니 말이다.
뭐 버마 현지에서 실제로 거기서 그런 일들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과연 어떻게 받아 들일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로써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또 그 관심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거라 믿을 수 밖에 없다. 믿는 마음이 기적을 이룰 꺼라고 생각하는 한 말이지.
결국 람보, 그 또한 베트남으로 대표되는 전쟁의 희생자이며 막연히 자신의 나라와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을 두려워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를 사냥견이자 평화 속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 대신 희생하는 체스의 말 '폰' 같은 버린 병졸로 몰아붙인 건 우리들 개개인이 아닐지 모르지만, 람보라는 캐릭터를 그렇게 몰아 붙인 책임이 없는 건 아닐것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건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감상주의적일지 모르겠지만, 액션 영화가 아닌 전쟁 영화로써 이번의 새로운 람보는 왕년의 액션 캐릭터도 결국 전쟁에 의해 망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찡하게 보여주는 그런 영화일 뿐이다. 그리고 전쟁영화로도 액션영화로도 평범한 가작은 아닌 것이다. 그 것이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내용적인 힘보다는 오랜 시간을 걸쳐서 쌓아온 캐릭터의 힘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일 것이다. 격동의 한 시대를 관객들과 함께 살아온 람보라는 캐릭터에 의한 것이란 점 말이다.
하여튼 진지한 척 적었지만 이 영화는 람보 시리즈 다운 영화다. 그리고 끝이 좀 밋밋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 만큼 죽였으니 충분하지 않은가 싶을 정도의 영화이다. 전설이 된 시리즈 1편 [First Blood] 이후로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이방에서 돌아온 귀환자의 슬픔과 이후 속편에서 이어진 '이런저런 핑계가 필요했던 전장에의 미련'이, 이 Last Blood라는 영화의 학살로 그칠 수 있다면 그 선으로 만족하고 싶다는, 딱 그 만큼의 영화이다.
아무래도 앞으로 헐리우드에서 어떤 영화가 나온다고 해도 이런 철저하게 '개인적인 시각에서의 전쟁 영화'가 다시 나오기는 무리일 것이다. 그런 것 만으로도 전쟁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그 뒤에는 흥행을 담보로 하는 국가 체제 선전을 위해서 어용전사 스러운 모습을 스스로 뒤집어 써야 했던 '골빈 살육자'라는 오명을 갖고 있던 람보에게는 이 영화가 제법 훌륭한 방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Farewell.
= 하여튼 이걸로 당분간 람보는 자신이 죽인 보디 카운터 숫자에서 존 매클레인 같은 애들에게 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디 카운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람보는 우리가 그를 전설의 킬링 머신으로 생각하고 기억하는 한, 그는 영원히 람보일 뿐이다. 결국 평화로운 세상에서 소외되었지만 그 평화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우리가 몇번이고 싸움터에 밀어 넣고 키워 놓은 사냥개로 그를 생각하는 한은, 영원히….
그리고 이렇게 영화는 끝났지만 그는 결코 과거를 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에 다시 한번 어딘가로 발걸음을 돌리는 것에서 이 람보 시리즈의 원점인 First Blood 도입부에서 미국 시골의 어딘가를 쓸쓸히 그리고 불안하게 걷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면,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결국 그가 킬링 머신의 과거를 버린 것은 아니지만 그 과거를 끌어 안고서 살아가려는 것처럼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결국 버릴 수 없다면 안고 가는 수 밖에….
그게 근육바보의 액션 영웅으로 살아갔던 실베스터 스탤론의 선택인지, 아니면 그가 리얼하게 연기한 람보라는 캐릭터 개인의 선택인지, 아니면 영화사나 소위 이 영화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의 선택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건 아니건 간에 그와 그의 영화가 반영하고 있는 현실의 일부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 주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이 영화는 그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비록 그런 '안전함의 쾌감'을 느끼기 위해 세계 어딘가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거리로 삼고 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런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그래서 무서운 호러 영화이며, 동시에 리얼한 전쟁영화이다. 다양한 의견과 다양한 사상이 서로 충돌한 끝에, 그 결과는 육체적이고 생물적인 폭력인 전쟁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 충돌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건 없건 간에 그것도 삶의 방법이며 한 형태일 뿐이다. 인간이 배출하는 것이 배설물 만이 아니라 더 구체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더 악의적이고 정신적인 폭력이될 수도 있다는 것. 그걸 구체적인 교훈극으로 보여준다기보다는, 그저 싸우고 죽이는 단 한 가지 밖에 모르던 한 남자의 망가진, 그리고 쓸쓸한 인생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 이 람보 시리즈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는 것. 내가 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런 dry한 작은 감흥이었을 지도 모른다.
세계가 변한 게 아니야.
람보가 변한 것도 아니야.
DAIN.
P.S. : 망상 한 마디.
: 영화의 마지막은 람보가 아버지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고향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끝난다. 시골집 앞의 'RAMBO'라고 쓰여진 낡은 우체통은 [수퍼맨 리턴즈]에서 KENT라는 이름이 쓰여있는 우체통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2차대전 이전의 캐릭터인) 수퍼맨만큼 람보라는 소재가 낡았다는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가 우리와 같이 한 시대를 살아온 굴곡을 가진 사람인 것이기도 하다. 느긋하게 줌 아웃되어서 멀어지는 롱 테이크를 배경으로 크레딧이 올라가지만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른다.
다만 망상이 있을 뿐! (웃음)
겨우겨우 고향 집으로 돌아온 람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버지도 가족도 아무도 없는 그저 텅빈 집 뿐. 그날 밤 집의 지하실 바닥에서 뭔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람보는 본능적으로 깨어난다. 난데없이 나타난 무수한 좀비들과 집과 집 근처 숲에서 서바이벌 매치를 벌이는 람보. 아침이 와도 좀비와의 싸움은 계속되며 끝없이 이어지는 살육이 계속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좀비의 리더 격인 존재가 나와서 람보에게 말한다. "I'm your father!' 'I know.'
람보 VS 람보! 좀비가 된 아버지 람보와 전장에서 킬링 머신이 된 아들 람보의 대결!
…… 죄송합니다, 썰렁했습니다.